한국의 산에 외국 등산객을

‘거기 산이 있어 산에 간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분명 외국의 유명한 등산가로 아마 에베레스트를 여러 번 올라갔던 사람일 것이다.

‘거기 친구가 있어 산에 간다’. 이 말은 주말마다 북한산과 같은 도시 근교의 산을 꽉 채우는 한국의 등산객들이 하는 말이다.

한국의 산에는 ‘엄숙주의’란 없다. 마치 횟불을 지고 화약고에 뛰어들어가는 것처럼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산에 올라가는 긴장감은 없다. 산소호흡기, 소독약이나 비상용 붕대를 지고 가기 보다는 막걸리와 홍어회를 배낭에 메고 우리는 산에 간다. 산에가서 다치기도 쉽지 않지만, 우리의 친절한 소방서의 구급요원들은 산꼭대기에 올라와서 응급처치해주고 헬기로 병원에까지 보내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주 드물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산행 인구에 비하여 자주 있다고 할 수는 없는 위험이다. 그런 마당에 ‘산은 위험해’하면서 군화같은 등산화에 수십만원짜리 바람막이 잠바는 과잉이다. 마치 일본의 전자제품들이 과잉품질과 과잉기능으로 시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한국의 산에서는 고독, 투쟁, 정복을 말하지 않는다. 세계의 내노라하는 높고 험한 봉우리 몇 개를 자기 손으로 장비를 만들어가면 처음 등정했던 ‘유학재(현 Fila 고문, 전 트랑고 대표)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의 산행기를 적는 카페에는 항상 친구가 있고 선후배가 있다. 이게 한국 산행의 아주 특별함이다. 외국의 유명한 산은 아주 험하고 기암절벽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해마다 수만명이 외국의 산에 가지만, 한국의 산에 오르기 위하여 오는 외국인은 많지 않다. 높지 않은데다가 알프스처럼 4계절 눈덮여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마치 뒷 마당에 있는 정원과 같은 산들이 많을 뿐이다.

그런데 한국의 자연과 문화라는 게 모두 그렇다. 정원을 예를 들면 한국의 정원은 중국의 정원처럼 웅장하지도 않고, 일본의 정원처럼 섬세하게 정리된 인공적인 면도 없다. 건축물도 만리장성이나 피라밋처럼 거대하지도 않고, 앙코르와트처럼 정교하지도 않다. 그저 앞뒷산과 잘 어울리면서 자연을 순응하는 게 한국의 건축문화이다. 한국의 등산도 그렇다. 거대한 등산대를 모집해서 몇날 며칠을 하늘을 찌를 듯하여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는 산을 가는 게 아니다. 높지 않지만 길게 늘여진 산 능선을 타고 가면서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오순도순 가는 산이다. 숲은 울창하지만 길이 잘 나있어 조난당할 염려가 없다.

‘백두대간’과 같은 등산코스에 좀 더 많은 대피소를 만들어 등산객이 필요한 물품을 준비해놓으면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배낭을 맬 필요도 없다. 한국의 산은 다른 나라의 산이 갖지 못하는 인간적인 면이 있다. 게다가 산에서 동행들과 각자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주변 풍광을 보는 등산 여행코스도 없다.

슬로우레져, 이제까지 비싼 경비를 들여서 빨리 보고 들어야 하는 패스트레져는 패스트푸드만큼이나 식상해져 있다. 한국적 슬로우레져를 외국인을 위한 관광상품화해보는 것도 시도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