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등산을 고민하자

칸첸중가 등반 실패 의혹을 받고 있는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 때문에 등산계가 시끌하다. 하지만 그의 등반은 사실 성공을 했건, 실패를 했건 역사적 의미는 그리 크지가 않다. 다만,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했다는 데서, 여성계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의 고지대 등산이 과거와 달리 인간의 고통을 겪으며 한계상황을 뛰어넘는 위대함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차라리 장비의 발달을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히말라야등산이 오랫동안 훈련된 전문 산악인들의 최고의 목표가 아니라 호사가들의 돈이 좀 많이 들어가는 여행정도가 되었다. 또한 인공위성과 GPS의 발달로 인간에게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는 이제 없다. 히말라야, 남극, 북극등 거의 모든 오지가 이미 탐험되고, 인공위성으로 사진을 찍어 집안의 컴퓨터에서 쉽게 볼 수있어, 목숨을 건 스릴있는 모험은 사라졌다. 그래서 지리학은 축소되고, 그 학문적 위치를 GPS나 네비게이션을 파는 기업이 대신하고 있다.

한국의 등산도 많이 발전했다. 히말라야 14좌를 등반한 산악인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남의 나라 장비를 가지고, 남의 나라 산에 많이 올랐다고 자랑할 때는 지났다. 그간 산악계에서 쌓아온 경험과 기술은 어느 나라 못지 않다. 이제는 한국의 등산을 외국에 팔 때가 왔다. 등산인구수나 산의 갯수를 보면, 지금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골프인구나 골프장보다 훨씬 많다. 문제는 장비이다. 97년 가셔브롬 4봉 서벽 코리안루트를 처음 등반하고, 한국 산악회의 히말라야 등정대를 대부분 성공으로 이끌었던 유학재는 과거 인터뷰에서 “몸은 국산인데 등반장비는 대부분 외제라는 게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고 하였다. 실제로 그는 ‘트랑고’라는 장비업체를 운영하면서, 한국적 장비를 무수히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서양의 알피니즘에 한국적 장비를 접목한 노하우를 그는 갖고 있다.

지금의 등산은 ‘풍류’가 빠진 ‘죽기 살기식’의 외제 등산이었다면, 한국적 등산을 외국에 알릴 만한 바탕이 만들어져 있다. 장비 제조에 대한 기술도 충분히 발달해있고, 그 것을 소비할 만한 시장도 충분히 있고, 또 갈만한 산도 많은 데다, 산에 가는 사람도 인구대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산악인이 사는 나라이다. 춤도, 노래도, 골프도, 반도체도, 자동차도 이제는 한국에 세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의 등산을 세계에 알린다면 그 것은 분명히 문화와 물건을 같이 팔아갈 수 있는 ‘블루오션’이 될 것이다.

얼마전에 수천마일에 달하는 아마존강을 859일간 도보로 종주한 영국인 에드 스태퍼드가 아마존강을 도보로 종주한 최초 인물로 기록됐다. 그는 새로운 미지의 땅을 개척한 것이 아니라, 기왕에 알려져 있는 아마존이라는 세계를 더 깊게 탐험했다. 앞으로의 모험은 더 새로운 곳, 더 높은 곳이 아니라, 더 깊고 더 가깝게가 될 것이다.

지리학과 탐험의 몰락은 생활등산을 즐기는 한국의 등산계에 분명 새로운 기회이다. 예를 들어 백두대간을 맨발로 걷는 코스를 만들면, 등산과 명상을 같이 하는 새로운 등산의 형식이 될 것이다.